우리가 제일 잘하는 그 일이 발목을 잡는 이유는, 그것이 약해서가 아니라 너무 강하고 너무 잘 맞물려 있어서입니다. 전략의 모든 부품이 한 점을 향해 완벽하게 정렬되면, 그 정렬이 곧 새로운 것을 보지 못하게 하는 눈가리개가 됩니다. 이를 정합성의 어두운 면이라 부를 수 있습니다('관성·엔트로피', '무의식적 경계' 개념 등). 인텔의 몰락이 그 증거입니다. 무능이나 관료주의가 아니라, 거의 30년간 세계에서 가장 일관되고 성공적이었던 전문화 전략 그 자체가 원인이었습니다.
인텔은 무능해서 무너진 게 아닌가요?
흔한 설명이 넷 있습니다. 자사주 매입에 돈을 쓰느라 R&D를 소홀히 한 금융화 탓, 반도체를 모르는 이사회 탓, 관료주의가 혁신을 목 졸랐다는 것, ARM 진영에 아래로부터 무너졌다는 것. 넷 다 부분적으로는 맞지만, 진짜 원인은 따로 있습니다. 인텔은 자체 공장(팹)을 운영하며 회로 설계와 제조 공정을 극도로 긴밀하게 통합하고, 모든 역량을 x86 CPU의 속도와 성능 단 하나에 쏟았습니다. 2011년 한 해 R&D가 84억 달러로, 경쟁사 AMD의 연 매출 전체보다 많았습니다. 1990~2000년대 매출총이익률은 50~60퍼센트, 경쟁사들이 3~22퍼센트일 때입니다. 설계 규칙도, 자체 도구도, 공정 투자도 전부 'x86을 세상에서 가장 빠르게'라는 한 점을 향해 맞물렸습니다. 완벽하게 정렬된 전략이 만든 압도적 성공이었습니다.
완벽한 전략이 어떻게 독이 되나요?
인텔은 새 시장에 세 번 도전했고 세 번 다 실패했습니다. 고성능 그래픽(GPU), 모바일 칩, AI 칩. x86에 최적화된 그 완벽한 설계 규칙이, 다른 종류의 칩을 만들 때는 족쇄가 됐기 때문입니다. CPU는 좁고 빠른 회로를 요구하지만 GPU는 넓은 데이터 통로와 높은 메모리 처리량을 요구하는데, 인텔의 규칙은 그 넓은 통로를 만들지 못했습니다. 모바일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휴대폰 제조사는 CPU·모뎀·와이파이·카메라·센서를 한 칩에 담은 완성형을 원했지만, 인텔은 x86 조각만 잘 만들었지 통합 솔루션을 내지 못했습니다. 퀄컴과 애플이 한 칩에 다 담을 때, 인텔은 자기가 잘하는 조각만 들고 있었습니다. 더 깊은 문제는 사고방식이었습니다. 기획자들은 새 기회마다 "더 빠르고 싸고 작은 x86이 결국 다 이긴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모바일도, GPU도 x86으로 풀려 했습니다. 게다가 x86의 높은 이익률이 비대한 조직을 먹여 살리니, 이익률 낮은 신사업엔 투자를 꺼렸습니다. CEO 오텔리니가 애플의 아이폰 프로세서 생산 요청을 거절한 것이 상징적입니다. 가장 큰 미래를, 가장 잘하던 기준 때문에 걷어찬 것입니다.
10나노 실패도 같은 이유인가요?
같은 뿌리입니다. 2010년대 중반, 업계는 EUV라는 새 노광 기술로 넘어가려 했습니다. 그런데 인텔은 자기 기술력에 대한 자부심으로, 기존 방식을 극한까지 밀어붙여 10나노를 자력 돌파하려 했습니다. EUV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10나노 수율이 너무 낮아 생산이 막히는 동안, 대만의 TSMC는 EUV로 7나노를 성공시켰습니다. 한때 경쟁사보다 18개월 앞서 있던 인텔이 순식간에 뒤처졌습니다. 뒤늦게 EUV로 전환하려니 더 큰 문제가 드러났습니다. EUV는 외부 파트너와의 긴밀한 협업을 요구하는데, 인텔의 폐쇄적이고 독자적인 방식이 바로 그 협업을 가로막은 것입니다. 한때 인텔을 최강으로 만든 그 폐쇄적 정합성이, 이제는 새 기술로 갈아타지 못하게 막는 감옥이 되었습니다.
한때는 강점을 버릴 줄 알았다면서요?
그렇습니다. 흥미로운 역설입니다. 인텔은 원래 메모리(DRAM) 회사로 시작해 한때 시장의 80퍼센트를 쥐었지만, 1980년대 일본 업체들의 품질 공세에 2~3퍼센트까지 추락했습니다. 그때 앤디 그로브와 고든 무어는 창업의 뿌리였던 메모리 사업을 과감히 버리고 마이크로프로세서로 갈아탔습니다. 그 결단이 인텔을 다시 제국으로 만들었습니다. 한때는 자기 강점을 버릴 줄 알았던 회사가, 정상에 오래 머물자 그 능력을 잃은 것입니다. 인텔을 정상으로 끌어올린 힘과 추락시킨 힘은 다른 것이 아니라 같은 것이었습니다. 잘 맞물린 전문화는 통하는 동안은 모방 불가의 탁월함이지만, 세상이 바뀌는 순간 가장 무거운 관성이 됩니다. 성공이 길어질수록, 버리는 용기는 줄어듭니다.
작은 회사에도 해당되나요?
대기업만의 일이라 생각하면 오해입니다. 작은 회사에 더 자주, 더 치명적으로 일어납니다. W사(정밀 금속가공, 직원 39명) 대표님은 한 가지 부품을 20년간 세계 최고 수준으로 깎아 온 분이었습니다. 모든 설비와 인력과 공정이 그 부품 하나에 완벽하게 맞춰진, 인텔의 축소판이었습니다. 새 고객이 전혀 다른 형태의 부품을 원했을 때, 첫 반응은 인텔과 똑같았습니다. "우리가 하던 방식으로 깎으면 됩니다." 그러나 그 방식은 기존 부품에 최적화돼 있어 새 부품엔 오히려 비효율적이었습니다. 20년의 강점이 새 기회 앞에서 눈가리개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가장 잘하는 것일수록, 가장 의심하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그럼 강점을 버려야 하나요?
처방은 역설적입니다. 강점을 버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강점이 만든 '무의식적 경계'를 의심하라는 것입니다. 새 기회를 만났을 때, "우리가 잘하는 방식으로 어떻게 할까"가 아니라 "이 기회 자체는 무엇을 요구하는가"부터 백지에서 물으십시오. 답을 기존 역량에서 찾지 말고, 문제에서 찾으십시오.
오늘 바로 할 수 있는 한 가지
오늘 저녁, 우리 회사가 가장 자랑하는 강점 하나를 종이에 적어 보십시오. 그 옆에 물으십시오. "이 강점이 못 보게 막고 있는 기회는 무엇인가?" 가장 강한 그 자리가, 가장 큰 사각지대일 수 있습니다. 가장 잘하는 일은 우리를 정상에 올려놓지만, 그 일을 의심하지 못하는 순간 우리를 거기 가둡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강점에 집중하라"는 말과 모순 아닌가요?
A. 집중은 여전히 맞습니다. 버리라는 게 아니라, 강점이 만든 무의식적 경계를 의심하라는 것입니다. 기존 사업은 강점으로 밀되, 새 기회는 그 기회 자체의 요구에서 새로 설계하십시오.
Q. 우리 강점이 눈가리개가 됐는지 어떻게 아나요?
A. 새 기회 앞에서 첫마디가 "우리 하던 방식으로 하면 되지"라면, 그것이 신호입니다.
Q. 정합성은 그럼 나쁜 건가요?
A. 아닙니다. 통하는 동안은 아무도 못 베끼는 탁월함입니다(이케아가 그 예입니다). 다만 세상이 바뀌는 순간 같은 정합성이 관성이 됩니다. 빛과 그림자가 같은 힘입니다.
Q. 인텔은 어떻게 했어야 하나요?
A. 새 기회(모바일·GPU·AI)를 x86 렌즈가 아니라 그 기회 자체의 요구에서 설계하고, EUV 같은 전환에는 폐쇄적 정합성을 열어 외부와 협업했어야 합니다. 한때 DRAM을 버린 그 결단력을, 정상에서도 유지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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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가인지컨설팅그룹 임종은 연구원. 직원 100명 이하 언더백 기업의 경영을 돕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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